ABOUT ARTIST
언제부터 그림 그리는 화가가 되고 싶어했나요?
저희 아버지도 화가였답니다. 어린 시절 아버지의 작업실에 들어가 캔버스에 붓을 문질러보면 그 거친 소리가 묘하게 좋았어요. 아버지도 홍대 서양화과를 나왔는데, 사람들이 부녀 모두 홍대 미대 출신이란 점을 무척 자랑스럽게 여기셨죠. 지금 아버지는 30년째 투병 중이랍니다. 뇌출혈로 쓰러진 뒤 오른쪽을 못 쓰게 되었는데도 왼손으로 어렵게 작업을 하고 계셔요. 눈도 어두워서 작업이라고 하기 보다 그냥 당신이 놓기 싫은 그림에 대한 미련을 푸는 거라 생각해요. 그렇게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시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제 인생에 스며든 것 같습니다.
유기견은 한국에 온 이후에 그리신 걸로 아는데요. 유기견을 그리기 시작한 계기가 무엇이었지 알려주세요.
아는 동생을 따라 유기견 봉사활동에 참여한 적이 있어요. 그 일이 계기가 되었지요. 당시 큰 아픔을 겪은 뒤라 몸도 마음도 약해져 있던 시점이었는데, 버려진 유기견들의 슬픔이 오롯이 저에게 전달되는 느낌을 받았어요. 그때만해도 작업을 재개하기 전이었고 몸도 너무 힘들었지만 유기견을 그리는 것만이 화가로서 봉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어요. 그렇게 작업 아닌 참여 형식으로 아이들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.
‘유기견을 그리는 작가’로 알려졌지만 작가님의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인물화도 눈에 뜁니다. 요즘은 어떤 주제로 작업을 하시나요?
한겨레의 ‘애니멀피플’ 연재가 끝나는 시점에 제 작업에 대한 정립이 필요했어요. 내가 동물을 그리는 작가인지 고민했죠. 마음 한 편으로는 인물화에 대한 욕구와 갈증이 있었어요. 요즘 들어서야 인물화 위주의 작업을 아주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. 제 작업의 근간은 ‘인간에 대한 존엄성’이라고 말하고 싶어요. 유기견을 작업할 때 ‘생명에 대한 존엄성’이 그 때의 근간이었던 것처럼 말이죠.
그림에 대한 작가님의 열정과 모험, 도전, 미래 계획 등이 궁금합니다.
서울에서도 그랬듯이 작업이 제 삶의 주인공이 될 수는 없었어요. 생활하려면 경제적인 부분이 해결되어야 했으니까요. 그래서 가게를 중심으로 한 쪽에 작업 공간을 마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. 그나마 이런 현실을 참고 견딜 수 있었던 건 가게 수입으로 자유롭게 작업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어요. 식당 운영을 100% 예약제로 하다 보니 예약이 없는 날에는 그림을 그렸어요. 늘 작업 시간이 부족했고 그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기에 가능했어요. 하지만, 불행히도 제 건강이 뒷받침해주지 못하고 있네요. 작가로서 갖고 싶은 모험, 도전, 계획 같은 것들은 지금으로선 너무 추상적이거든요. 제 자신과 할 수 있는 유일한 약속은 상황이 허락하는 한 계속 한다, 계속 그리겠다는 것입니다.